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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바다.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김지영 감독이 나오면서 언젠가 이 영화가 나올 것이라고 그게 언제쯤인지는 알지 못했다. 

 

이 영화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의 침몰원인을 감독 나름의 논리적인 방법으로 푼 다큐멘터리다. 감독은 세월호 AIS 항적도, 전문가 및 생존자 인터뷰, CNN 방송 등을 언급하며 논리를 입증하기 위한 사실을 쉽게 알려준다. 

세월호의 침몰원인은 여러 다양한 설이 있다. 그렇지만 어느 하나 제대로 확실히 밝혀진 것이 없다. 그날 바다, 제작자인 김어준씨도 세월호 침몰원인에 대해 모든 가설은 열어두고 있으며 반론이 있을 수 있다고 영화에서 밝혔다. 세월X를 만든 네티즌 수사대 자로와 김관묵 교수는 외력설에 대해 일부 유사하지만 다른 가설을 제기하고 있다. (세월X도 열심히 봤것만, 기억이 1도 안난다;) 

 

이 영화는 내게 여러가지 복잡한 감정을 안긴다.  

'얼마나 진실로 다가가기 어려우면 감독이 발벗고 나서 영화를 제작했어야 했나', 라는 슬픔과 '누군가들의 노력으로 이 영화가 안나왔다면 나는 세월호의 침몰원인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했겠다. 조용히 진실이 묻혀버렸겠다.' 라는 안도감.  

 

부디 이 영화를 시작으로 세월호의 진실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났음 좋겠다. 

잊지 않겠습니다.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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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명한 영화는 아니다. 우연히 검색하다가 <두개의 빛 : 릴루미노> 유투브 채널로 알게 된 거다. 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출연진과 감독 때문에 보기로 결정. 재생시간 31분, 짧은 영화다. 릴루미노는 '빛을 되돌려주다'라는 뜻으로 라틴어 어원이라고 한다. 

간단한 영화 줄거리는 사진동호회에서 만나게 된 시각 장애를 가진 수영과 인수가 사진을 통해 점차 서로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되는 이야기이다. 남녀의 사랑이야기지만,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은 '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소중한 것이구나, 였다.  

영화에서 저시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 기기가 나오는 것이 신기했다. 영화를 본 후에 검색을 했더니 릴루미노는 삼성전자에서 만든 저시력인을 위한 보조앱이였다. 따로 저시력인용 VR 기기가 있는 것이 아니고, 앱을 설치하면 기존 VR 기기도 사용이 가능한 것이였다. 게다가 무료 배포였다. 그래서 영화 제목이 릴루미노였구나 싶었다. 

삼성전자 릴루미노 홈페이지 : https://www.samsungrelumino.com/

왜 31분 유튜브 채널 배포 영화에 배우 한지민씨와 박형식씨가 나오게 되었는지, 감독은 허진호 감독이였는지, 왜 삼성전자에서 영화를 업로드 했는지 조금 알게 되었다. 제대로 릴루미노와 VR기기 PPL이였지만, 그래도 영화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다. 다행히 PPL이 불편하지 않은 잔잔한 사랑이야기였다. 

두개의 빛 : 릴루미노 유튜브 채널 : https://www.youtube.com/watch?v=3y5zBY96M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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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난 미술관 옆 동물원, 이 영화를 즐겨봤었다. 비록 많은 관객에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생각보다 이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까 싶다. 그중 나도 하나고, 울적할때마다 보면 뭔지 모를 기분이 좋아진다. 꼭 초콜릿을 한가득 입에 집어넣은 맛이라고 할까? 이제 하도 많이 봐서 어디서 어떤  대사가 나오는 정도는 기본이고, 대사를 따라할 정도지만. 지루하지 않다. 또 어떤 사물에 대한 시각이 나와 다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몇 년뒤의 내 나이를 생각해보면 끔찍했는데 막상 그 나이가 됐을때 담담할 수 있는건 나이를 한살씩 먹어서인가봐. 그럼 그 다음 나이가 그리 낯설지만은 않거든."

군휴가를 나와 옛 애인 다혜를 찾아온 철수, 하지만 그 집엔 다혜는 없고, 결혼식 비디오 촬영기사인 춘희가 살고 있다. 철수는 다혜를 만난다며 그 집에 눌러앉고 춘희는 의도치 않게 낯선 남자와 동거를 하게 된다. 춘희가 밤마다 시나리오를 쓰는 것을 알고 철수는 타이핑을 해주기로 약속을 하고 시나리오 안에 녹아들어 있는 춘희의 사랑을 바꾸려고 한다. 춘희와 철수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고 좋아하는 감정이 싹트게 한다.  

"사랑이란게 처음부터 풍덩 빠지는건 줄로만 알았지,  이렇게 서서히 물들어 버릴 수 있는 건 줄은 몰랐어." 

'미술관 옆 동물원'은 서로 다른 사랑하는 방식과 가치관을 가진 철수와 춘희의 동거를 통해 가치관과 감정의 변화를 조금씩 보여준다.  그리고 1998년이라 지금처럼 사랑의 표현방식이 적나라하지 않아 좋다. 

날씨가 따뜻해지는 봄엔 미술관과 동물원이 있는 과천을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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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3년만에 첫 직장을 그만뒀다. 3년 정도 회사에 다녀봤더니 대학생 때보다 금전적인 여유는 생겼는데, 마음의 여유가 사라졌다. 회사생활도 어느정도 익숙해졌는데 갈수록 삶의 활력은 없어지고,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 할지 암담했다. 게다가 일이 나와 맞지 않아 매일매일 고통스러웠다.

아무것도 정하지 않고 퇴사, 그 때 나이 29살, 3월

'나의 서른에게'는 내게 옛일을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다. 

'나의 서른에게' 라는 영화는 나이와 생일이 같은 두 여성을 통해 서른이 되기 전 스물아홉이 느끼는 고민을 우리에게 털어놓는다. 번듯한 직장, 승진, 연애 무엇 하나 빠질 것이 없는 임약군, 파리로 여행을 떠난 황천락의 집에 머물면서 임약군은 모든게 완벽하게 보였던 자신의 삶에 균열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음반가게 점원, 퉁퉁한 외모, 남들이 보기에는 보잘 것 없어보이지만 삶에 대해 긍정적인 황천락이 쓴 일기를 보며 임약군은 서른을 맞이할 용기를 얻는다.    

"우리는 매일 죽음을 향해 걸어가니까. 남은 시간이 얼마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가고 싶은 곳을 가면 되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행복했던 모든 순간들을 기억하는 거지. 인생은 우리 뜻대로 되진 않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살아가는 것뿐이야."

이 영화는 서른만을 위한 영화가 아니다. 삶을 살아가는 모두를 위한 영화이다. 타인에게 보여지는 완벽했던 삶이 오히려 공허해지기도 하고 소중한 걸 무심코 지나칠 때가 있다. 그 땐 잠깐 멈춰서 내안의 나를 살피는 게 필요하다. 잠깐 다른 사람보다 늦을 수는 있겠지만 그래야 앞으로 남은 삶을 기꺼이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꿈의 시작은 0이다. 

'나의 서른에게'는 홍콩에서 10년동안 인기있었던 연극 <29+1>을 영화화한 것이다. 왜 인기가 있었는지 알 것 같다. 그리고 주인공 황천락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우연히 본 영화에 감사하며, 나도 이탈리아 피렌체 두오모를 꼭 가봐야겠다. 내 버킷리스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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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인생은 알 수 없으며, 어디선가 달려오는 고통을 막을 수 없다. 살아가는 동안 고통은 인간 본연이 이겨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밀양은 내게 이런 문제를 던진다.

'종교는 인간에게 구원을 줄 수 있는가'

내 대답은 '아니오' 이다. 인간이 얻는 고통은 결국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스스로 치유를 하는 것이다. 다만 종교는 상처 치유의 과정을 도와주는 매개일 뿐이다. 인간의 상처 응어리는 자신의 풀기 전까지는 누구도 풀 수 없다. 결국 절대자 역시 제 3자다. 

'용서, 고통받은 사람은 용서를 하지 않았는데, 고통을 준 사람은 절대자를 통해 용서를 받을 수 있는가' 

내 대답은 '네. 용서받을 수 있다' 이다. 밀양의 주인공 신애가 교도소 면회를 간다. 당황스럽게도 도섭은 '하나님께서 이미 저를 용서하셨습니다.'라며 일방적으로 말한다. 참 뻔뻔하다.도섭이 말한 '용서'란 고통받은 사람과 별개로 속죄하여 절대자를 통한 마음의 평정을 얻은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가 진실로 절대자를 통한 용서를 받았다면 도섭은 신애에게 그렇게 뻔뻔하게 나올 수 없다. 신애에게 만나자마자 '죄송하다' 라고 말했을 것이다. 사이비 종교가 아닌 이상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종교 지도자는 도섭처럼 무책임하게 행동하라 가르치지 않는다. 그리하여 내 생각은 도섭 자신은 용서를 받았다고 믿었을 뿐 어쩌면 절대자에게 진실로 용서받지 못한 것이다.  

'비밀 밀(密), 볕 양(陽), 비밀스러운 햇살'

상처받은 사람에게 아무도 모르게 비밀스럽게 다가가는 햇살 같은 존재가 바로 사람인 것이다. 가끔은 가는 곳곳마다 따라다니는 그림자처럼, 어느샌가 모르게 다가오는 햇살. 종교로 구원받지 못한 그녀에게 바로 그는 의지처가 된 것이다. 둘의 앞으로 이야기가 해피엔딩일지는 모르지만, 세상살이에서 결국 상처를 보듬어 새살을 돋게하는 건 사람들이기에. 밀양의 의미는 바로 희망인 것이다. 

 

밀양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극도로 짜여진 고통의 현실이긴 하지만, 그 안에서 햇살로, 결국 극복할 것이다. 그렇기에 보이지 않는 상처들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이고, 다시 희망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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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때문에 비밀입니다" 라는 카피를 우리에게 던져 주고 영화는 이야기를 꺼내놓으려 한다. 그 가운데에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천연덕스럽게 명란젓을 하나를 후딱 해치우는 그런 평범한 사람, 그는 헤이스케다. 우연히 그는 텔레비전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기자의 목소리를 그날따라 유난히 주시한다. 사랑하는 아내 나오코와 딸 모나미가 탄 버스가 낭떠러지로 추락을 했던 걸 대번에 그는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응급실에서 그가 마주한 모녀는 생명의 빛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그가 절망하고 있을 때 기적적으로 모나미가 살아난다. 헤이스케는 뭔가가 잘못 되었음을 인지한다. 그녀는 모나미의 몸을 빌려 살아난 나오코였다. 

 

 

그는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영화 속 이야기만 같았던, 빙의라는 현상을 자신이 겪어야만 하는 평범하지 않은 인물로 하루아침에 변하게 된다. 헤이스케는 사고이후 사랑하는 아내와 삶은 예전과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딸의 몸을 가진 아내는 부부로 지내기에는 제약이 많이 따르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밖에서는 고등학생인 모나미의 모습으로, 집에서는 주부인 나오코의 모습으로 그들은 2개의 다른 상(象)을 갖게 함으로써 현실의 벽을 넘으려고 한다. 

 

이제 나오코는 다시 찾게 된 제2의 인생을 모나미의 몸으로 표현하고 생각한다. 유행하는 짧은 교복치마를 입는 모습, 열심히 동아리 활동을 하는 모습 등, 자신의 결혼으로 해보지 못한 자신의 꿈을 펼쳐나간다. 이제 나오코가 자신의 청사진을 그려갈 무렵, 반면 헤이스케는 자신의 모습을 모나미와 비교함으로써 자신의 무능감과 모나미에 대한 불신감이 높아진다. 

 

 

그들이 함께 넘으려는 현실의 벽은 높았고 그 벽을 넘으려는 순간, 그들은 자신의 본모습을 깨닫게 되고, 주저하고, 아파한다.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자신의 딸의 몸이기 때문에 안지 못하는 헤이스케에게는 이제 사랑하는 아내 나오코는 더 이상 아내가 아니고, 자신의 딸 모나미도 아닌 제 3의 인물이 되어버린다.

"우리는 우주에서 왔어" 

그 한마디. 헤이스케의 심정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말인 것 같다. 우주란 곳은 대부분의 지구인들은 가보지 못한 미지의 공간이다. 우주에서 온 자신들, 빙의된 나오코와 헤이스케 자신이다. 우주인은 지구인에게 이상한 공간에서 온 사람들이고, 지구에서는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지금 자신의 모습과 너무나 유사한 우주인의 모습은 현실에서 삶을 아파하게 만든다.

 

 

갈등이 서서히 잦아드는 날, 라면집에서 일하는 후미야의 아버지라는 역할에 대해 깨달음의 시간을 갖는다. 그 순간부터 그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자신이 현실의 벽과 부딪쳐서 아파하고 있기에 자신이 나오코를 가두어 두고 있는 건 아닌지, 빙의가 된 그 순간부터 그녀는 자신의 아내가 아니였던 것을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닌지, 여러 가지 상념의 끝을 잡고 그는 이제 어느 정도 홀로 살아갈 수 있게 되면 놓아줘야 된다는 걸, 미안함을 느낀다.  

 

나오코의 연극. 헤이스케에게 나오코의 자리를 모나미에게 넘겨줘 버리고 자신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줄여가게 만들어버리기 위한,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는 헤이스케를 보면서 그녀가 생각한 발상이였다. 헤이스케는 영화 마지막까지 자신의 아내인 나오코를 사랑한다. 자신의 딸 모나미였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나오코였다는 사실. 사람이라면 당연히 배신감을 느껴야 하지만, 영화는 헤이스케를 순애보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만약 다른 사람 몸에 사랑하는 사람이 빙의가 되었다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계속 사랑을 유지할 것인가? 

 

아마도 대부분 사람들이 남편과 아내와 같은 어정쩡한 사이 그대로 살아갈 것이다. 난 아마도 그렇게 살아갈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둘의 인생 자체가 얼크러져 버릴지 모른다. 서로 의심과 질투로 각자의 생활은 뭉그러져 버린 채 말이다. 

 

 

하지만 비밀에서는 우리가 생각했던 상식의 틀에서 딸과의 동거라는 이상한 소재를 잡고 갈등을 그려나갔다. 그리고 사건들은 헤이스케에게 불가피한 선택을 강요한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모습의 밧줄을 잡아당긴다. 그가 잡았던 밧줄이 비록 썩은 동아줄을 잡아 아픔을 맛보았더라도 그가 선택한 삶은 누구보다 현명했다고 생각한다. 현실과는 반대의 모습을 표현했을런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통해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줌과 동시에 각자의 삶을 조금은 상처를 받지만 나중에는 둘 모두에게 삶의 해법을 던져준 것이 아닐까? 단순히 같이 산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서로의 가슴속에서 예전의 사랑했던 모습을 추억하는 것도 사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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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홈페이지를 없애면서 영화감상문이 아까서 이 블로그에 영화감상문을 옮겨보려고 한다. 

이 글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신세기 일본은 혼란하다. 그 혼란을 대처하기 위한 방법으로 신세기 혁명법 BR법을 마련한다.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수학여행 도중에 납치가 되고 이제 무인도에서 3일동안 혼자 살아남기 위한 게임이 시작된다. 

문을 나서는 순간, 영원한 친구도 존재하지 않고, 서로 등에 칼을 꽂는다. 친구는 적이되고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남을 죽여야 하는 상황이다. 서로를 믿지 못하고 오직 믿는 것은 자신과 자신의 무기가 되고 만다. 영화를 보기 시작한 순간부터 이제 난 공자가 말한 성선설을 이해할 수 없다. 극한 상황에 치닫을수록 이타심은 사라지고 이기심만이 존재하므로. 

솔직히 이 영화 너무 잔인하고, 폭력적이다. 하지만 단순히 이런식의 평가를 받기에는 들어있는 내용들이 너무 많다. 내용들이 흘러가면서 일본의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삽입함으로 현실을 풍자한다. 

왜 그 아이가 저런식으로 그 게임에 임해야 하는가? 라는 걸 말이다. 신세기의 일본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혼란스럽다. 많은 실업자들이 생기고, 그로 인해 어른들은 무능력이라는 말에 자살을 시도한다. 또한 교권은 땅에 떨어지고, 학생들은 등교거부를 시작했다. 반 친구를 이지메하고, 부모는 어린 딸을 팔아버린다.

더이상 어른들의 무능함을 감추고, 자신이 만들어 놓은 어른들의 세상을 공고히 하기 위해 강력한 지배정책 배틀로얄이라는 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그 속에 내포된 의미 옛부터 지금까지 만들어온 방식과 전혀 다르지 않고, 강한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약육강식의 논리만이 적용되었다. 단순히 그런 논리들로 어른들의 자리를 찾으려 한다면 그 법 자체는 의미가 없다. 이제 어른들이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는 의문이 화면에 나오는 순간, 난 아이들에게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고, 불신으로 가득한 세상을 타계하기 위해선 말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누가 살아남을까? 어떤식으로 살아남지? 라는 생각보다 사람이 이렇게 서로를 믿지 못하는데서 시작하면 결국 모두가 죽게 되는 구나! 라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도중에 등대에서 여학생 모두가 죽게 되는 장면이 가장 가슴 아플 정도로 -  인간에 대한 회의와 동시에 결국 인간은 혼자 살아가는 동물이구나를 느끼게 했다. 

엔딩을 보면서 결국 씁쓸함만 계속 입가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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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5년. 이 블로그를 방치했다. 갑자기 문득 생각이나 작은 일상을 남겨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의 (스포無) 영화감상문이다.  

 

영화 포스터는 교복을 입은 남학생과 여학생이 벚꽃이 한가득 핀 다리 위에 서있고 그야말로 서정적인 분위기인데, 영화 제목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였다.  

이거 학원물 아니고 공포영화인건가?

근데 '췌장'은 어디있는건가? 

(췌장은 '이자'라고도 불리며 위장 뒷쪽에 있다.)

간단한 줄거리는 췌장에 병이 걸린 시한부 인생을 사는 여학생과 그 사실을 알게 된 남학생의 이야기다. 도서관으로 시작하는 분위기가 영화 '러브레터'와 시한부 인생을 사는 여학생은 드라마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에서 비슷하다. 물론 전체적인 분위기는 다르다. 오히려 명랑하다.

한국에서 개봉되는 일본 영화는 유독 학창시절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그 사랑은 지고지순하다. 

학창시절 첫사랑 영화가 많은 이유는 일본인의 특성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일본인은 강한 애정이나 증오를 느끼고 있었다 하더라도 말로 표현하거나 얼굴에 나타나지 않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한다. 또한 옆 사람에게 폐를 끼지 않기 위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그래서 혹자는 일본인의 속마음을 알기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인의 특성이 만들어지기 전에 자신의 마음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시기가 바로 학창시절이라는 것이다.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이다. 나도 이 의견에 동감한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발랄한 여학생과 조용한 남학생의 이야기가 작위적이지 않아 좋았다. 주옥같은 명대사가 많았지만, 기억할 수 없었다. 시한부 인생의 여학생을 통해 지금, 바로 여기에서 현재를 값지게 살아가야 한다는 걸 다시 알려줘서 너무 고마웠다. 

제가 눈물이 많은 사람이긴 하지만, 손수건을 준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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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감독 - 신조 타케히코

출연진
사토나카 시즈루 역 - 미야자키 아오이
세가와 마코토 역 - 타마키 히로시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라는 제목의 영화다. 친구의 추천으로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보는 내내 재미있었다. 사실 의학적으로 설명이 될련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영화는 허구를 만들어 내니까 그런가 부다 이해할 수 있다.

이번에 포스팅 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감독이 '지금 만나러 갑니다' 감독이라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사한 분위기인 걸 보면 역시 영화도 감독 분위기에 따라 만들어 지는 구나 싶다.

그의 사랑도 아프고,
그녀의 사랑도 아프지만

사랑은 누군가에게 마음을 옮기는 가장 행복한 일.

'단 한번의 키스, 단 한번의 사랑'

아마 이 한 줄로 이 영화를 소개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영화의 대사로 기억하는데, 어떤 사람이 이걸로 이 영화를 설명할 수 있어 라고 묻는다면, 이 영화를 보시면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사람을 만나고 누군가를 좋아하고 함께 하고 싶고 이런 모든 순수한 감정들을 이 영화에서 느낄 수 있다. 내용은 SF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구성상 전혀 무리없이 만든 영화. 

요즘 일본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 대한 포스팅을 하다보면 어찌 나는 다 괜찮다, 라는 것 밖에 없는가 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가 일본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는 것도 있지만, 보는 것마다 주변 사람들의 추천을 받아서 본 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역시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도 괜찮고, 참 순수하게 보기 좋다 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리고 노다메 칸타빌레에 나오는 타마키 히로시의 군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근데 아무리 봐도 타마키 히로시 군은 노다메 이외에는 멋져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뭐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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