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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비밀입니다" 라는 카피를 우리에게 던져 주고 영화는 이야기를 꺼내놓으려 한다. 그 가운데에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천연덕스럽게 명란젓을 하나를 후딱 해치우는 그런 평범한 사람, 그는 헤이스케다. 우연히 그는 텔레비전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기자의 목소리를 그날따라 유난히 주시한다. 사랑하는 아내 나오코와 딸 모나미가 탄 버스가 낭떠러지로 추락을 했던 걸 대번에 그는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응급실에서 그가 마주한 모녀는 생명의 빛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그가 절망하고 있을 때 기적적으로 모나미가 살아난다. 헤이스케는 뭔가가 잘못 되었음을 인지한다. 그녀는 모나미의 몸을 빌려 살아난 나오코였다. 

 

 

그는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영화 속 이야기만 같았던, 빙의라는 현상을 자신이 겪어야만 하는 평범하지 않은 인물로 하루아침에 변하게 된다. 헤이스케는 사고이후 사랑하는 아내와 삶은 예전과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딸의 몸을 가진 아내는 부부로 지내기에는 제약이 많이 따르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밖에서는 고등학생인 모나미의 모습으로, 집에서는 주부인 나오코의 모습으로 그들은 2개의 다른 상(象)을 갖게 함으로써 현실의 벽을 넘으려고 한다. 

 

이제 나오코는 다시 찾게 된 제2의 인생을 모나미의 몸으로 표현하고 생각한다. 유행하는 짧은 교복치마를 입는 모습, 열심히 동아리 활동을 하는 모습 등, 자신의 결혼으로 해보지 못한 자신의 꿈을 펼쳐나간다. 이제 나오코가 자신의 청사진을 그려갈 무렵, 반면 헤이스케는 자신의 모습을 모나미와 비교함으로써 자신의 무능감과 모나미에 대한 불신감이 높아진다. 

 

 

그들이 함께 넘으려는 현실의 벽은 높았고 그 벽을 넘으려는 순간, 그들은 자신의 본모습을 깨닫게 되고, 주저하고, 아파한다.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자신의 딸의 몸이기 때문에 안지 못하는 헤이스케에게는 이제 사랑하는 아내 나오코는 더 이상 아내가 아니고, 자신의 딸 모나미도 아닌 제 3의 인물이 되어버린다.

"우리는 우주에서 왔어" 

그 한마디. 헤이스케의 심정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말인 것 같다. 우주란 곳은 대부분의 지구인들은 가보지 못한 미지의 공간이다. 우주에서 온 자신들, 빙의된 나오코와 헤이스케 자신이다. 우주인은 지구인에게 이상한 공간에서 온 사람들이고, 지구에서는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지금 자신의 모습과 너무나 유사한 우주인의 모습은 현실에서 삶을 아파하게 만든다.

 

 

갈등이 서서히 잦아드는 날, 라면집에서 일하는 후미야의 아버지라는 역할에 대해 깨달음의 시간을 갖는다. 그 순간부터 그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자신이 현실의 벽과 부딪쳐서 아파하고 있기에 자신이 나오코를 가두어 두고 있는 건 아닌지, 빙의가 된 그 순간부터 그녀는 자신의 아내가 아니였던 것을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닌지, 여러 가지 상념의 끝을 잡고 그는 이제 어느 정도 홀로 살아갈 수 있게 되면 놓아줘야 된다는 걸, 미안함을 느낀다.  

 

나오코의 연극. 헤이스케에게 나오코의 자리를 모나미에게 넘겨줘 버리고 자신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줄여가게 만들어버리기 위한,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는 헤이스케를 보면서 그녀가 생각한 발상이였다. 헤이스케는 영화 마지막까지 자신의 아내인 나오코를 사랑한다. 자신의 딸 모나미였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나오코였다는 사실. 사람이라면 당연히 배신감을 느껴야 하지만, 영화는 헤이스케를 순애보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만약 다른 사람 몸에 사랑하는 사람이 빙의가 되었다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계속 사랑을 유지할 것인가? 

 

아마도 대부분 사람들이 남편과 아내와 같은 어정쩡한 사이 그대로 살아갈 것이다. 난 아마도 그렇게 살아갈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둘의 인생 자체가 얼크러져 버릴지 모른다. 서로 의심과 질투로 각자의 생활은 뭉그러져 버린 채 말이다. 

 

 

하지만 비밀에서는 우리가 생각했던 상식의 틀에서 딸과의 동거라는 이상한 소재를 잡고 갈등을 그려나갔다. 그리고 사건들은 헤이스케에게 불가피한 선택을 강요한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모습의 밧줄을 잡아당긴다. 그가 잡았던 밧줄이 비록 썩은 동아줄을 잡아 아픔을 맛보았더라도 그가 선택한 삶은 누구보다 현명했다고 생각한다. 현실과는 반대의 모습을 표현했을런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통해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줌과 동시에 각자의 삶을 조금은 상처를 받지만 나중에는 둘 모두에게 삶의 해법을 던져준 것이 아닐까? 단순히 같이 산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서로의 가슴속에서 예전의 사랑했던 모습을 추억하는 것도 사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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